욕지권

욕지면은 본래 옛 가야의 영토로 이전에는 고자미동국의 영토였으며, 6가야 중 수로의 막내 동생인 말로가 지배하던 소가야(지금의 고성)에 속했다.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에는 독로국, 고자군, 고성군 지역이었다.

석기시대의 패가, 입석, 석기, 토기, 돌칼, 돌도끼, 항아리등의 유적과 유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입증하고 있는데,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화로, 기왓장, 금불상 등도 출토되어 선대들이 이 섬을 영원한 삶의 터전으로 삼아 연연히 살아 왔음을 알 수 있다.


욕지도의 지명에 관한 유래로는 여러 갈래의 설이 있다.

먼저 옛날에는 "녹도(양녹도)"라 일컬었다는 설인데 이는 통제영이 고성현 춘원면(현 통영시내 일대)에 주둔할 때 조정에 진상할 목적으로 직접 사슴사육을 하였고 이에 1888년 개척자들이 처음으로 입도 하였을 때 수목이 울창하고 가시덤불과 온갖 약초가 뒤엉킨 골짜기마다 사슴들이 뛰어다녔다는 증언을 토대로 일제 때 만들어진 이름이다.

이 밖에 구전이 되어 오는 설로는 "호주"라 불렀다는 설도 있고 욕지항 안에 또 하나의 작은 섬이 거북이 모양으로 목욕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욕지"라 일컬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유배지였기 때문에 많은 인물들이 이곳에서 욕된 삶을 살다 갔다 해서 "욕지"라 불렀다고도 하는데 욕지가 유배지란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지금의 욕지도란 지명의 유래에 관해서는 서기 42년 낙동강하류에 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왕의 형제6인중 막내인 말로가 서기 44년 3월에 지금의 고성 땅에 소가야를 세웠다.

소가야 사료 "철성지"에 소가야는 9대 왕계에 걸쳐 2현, 6향, 10부곡의 18주와 20개 도서를 다스렸는데 20개 도서 중에 욕지도, 연화도, 노태도(현. 노대도), 적질도(현. 납도)가 현 욕지면 관내에 있는 섬으로 이 시대부터 욕지의 지명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개척자들의 구전에 따르면 입도 할 당시 전선소, 치소, 관소, 봉화대 등의 유적이 있었다 하는데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 욕지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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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욕지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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